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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명량>은 이순신 장군의 시리즈 영화 중 첫 번째 시리즈로 '명량해전'을 역사적 배경으로 하는 영화입니다. 2014년 개봉한 이 영화는 천만 관객을 모으며 역대 관객수 1위를 차지하며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드라마와 영화가 제작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한고 이 영화가 크게 성공할 있었던 이유를 영화의 역사적 배경과 지리적 특성, 줄거리 정리, 영화 속 명장면을 통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순진 장군과 흔들리는 배

    명량해전의 역사적 배경과 지리적 특성

    임진왜란 당시인 1597년 10월 26일에 일어난 이 전설적인 해전은 한민족의 불굴의 정신과 흔들림 없는 결의를 보여줍니다. 이순신 장군과 그의 함대는 압도적인 승산으로 우리 역사를 영원히 바꾼 기적적인 승리를 이뤘습니다. 임진왜란은 1592년(선조 25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끄는 일본이 한반도를 정복하려고 일으킨 전쟁입니다. 일본군은 수적으로 압도적이었으며, 첨단 무기를 앞세워 한반도를 점령하려고 했습니다. 1597년(선조 30년)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6년째, 계속되는 전쟁으로 인해 온 나라가 황폐해지고 혼란 속에 있을 때 일본은 한양으로 다시 북상할 계획을 세우고 막강한 수군을 이끌고 한반도로 향했습니다. 이에 선조는 정치적 음모로 인해 누명을 쓰고 파면당한 이순신 장군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미 조선의 수군은 궤멸하다시피 하여 병사도 전함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백의종군한 이순신 장군은 흩어져 있는 병사들을 모으고, 12척의 선단을 모아 진도와 한반도 남서해안 사이의 좁은 해협에 배치했습니다. 진도와 한반도 남서해안 사이에 위치한 명량해협은 해류가 불안정하여 조류를 예측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진 좁은 수로입니다. 이순신 장군과 우리 군함이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과 대치한 곳은 이런 전략적 해상통로였습니다. 명량해협의 지리적 특징은 전투 결과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해협의 협소함으로 인해 일본 대형 군함의 기동성이 제한되었고, 이순신 장군의 작고 민첩한 함선이 유리해졌습니다. 게다가 예측 불가능한 조류와 조수의 흐름은 일본 군함에 큰 걸림돌이 되었지만, 이순신 장군과 그의 부하들은 현지 해역에 정통했습니다. 명량해전은 1597년 10월 26일 명량해협에서 일어났습니다. 12척의 군함으로 구성된 이순신 장군 함대는 133척의 일본 함대와 교전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탁월한 전략적 통찰력과 혁신적인 전술을 구사하며 좁은 해역에서 적함의 취약성을 능숙하게 이용했습니다. 압도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이순신 장군과 수군은 일본군 대부분을 파괴했습니다. 명량 전투는 일본의 진군을 저지하고 해군력을 크게 약화시킴으로써 임진왜란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영화 <명량> 줄거리 정리

    1597년 왜군의 1차 침략인 임진왜란 이후 휴전 협상이 결렬되어 또다시 일본은 침략을 해옵니다. 당시 원균이 이끌던 조선 수군은 칠천량 전투에서 대패하고 말았고, 당시 거북선을 모두 잃고 12척의 판옥선만이 남아 있는 상태였습니다. 선조는 수군을 육군에 합류하라 지시하고 바다를 포기할 수 없었던 이순신은 권율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임진왜란 때 한산도 대첩으로 이순신에게 크게 당했던 왜군은 특단의 조치로 정규군이 아닌 해적 구루지마를 출전시킵니다. 조선군은 칠천량 전투의 대패로 병사들의 사기가 크게 떨어져 있었고 결국 탈영을 시도하는 병사까지 발생합니다. 이순신 장군은 탈영병의 목을 베고 군율의 준엄함을 강조합니다. 승산 없는 싸움을 이어나가는 이순신 장군에게 불만을 가진 부하 장수가 결국 거북선을 불태우고 맙니다. 마지막 거북선을 잃은 이순신은 울돌목의 거센 물살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깁니다. 왜군은 거북선이 불탔다는 소식에 서둘러 출정 준비를 마칩니다. 승산 없는 싸움을 포기하고자 부하 장수들은 이순신 장군을 찾아갑니다. 이에 이순신은 병사들을 모두 모은 후 돌아갈 집을 불태워 버립니다. 그렇게 결의를 다지며 전투 준비에 임합니다. 드디어 이순신 장군과 부하들은 출장합니다. 멀리 시야에 들어오는 엄청난 수의 왜군들을 보고 이순신이 탄 대장선을 제외하고 나머지 부하들의 배들이 뒤로 물러나버립니다. 하지만 이것에 개의치 않고 이순신 장군은 전투 준비를 서두릅니다. 예상한 대로 거센 물살에 왜군의 배들이 흔들리자 때를 놓치지 않고 조선군의 공격이 시작됩니다. 일본이 순식간에 전멸당하자 왜군 구루지마는 더욱 몰아붙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울돌목의 물살이 바뀌며 소용돌이가 발생합니다. 구루지마는 물살이 더 강해지기 전에 전투를 끝내기 위해 돌진합니다. 하지만 울돌목의 물살로 인해 생긴 회오리에 양쪽 모두 갇히고 맙니다. 구루지마를 제압한 이순신 장군의 배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고 백성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납니다. 이순신의 활약을 지켜보던 나머지 장수들도 뒤이어 참전하고, 전투 의지를 불태우며 왜군의 본대를 향해 전면 공격합니다. 결국 이순신은 울돌목을 향해 오는 왜군들의 길목을 차단해 내며 후퇴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영화 속 명장면

    1. 오프닝 장면 

    이순신 장군의 귀환 영화 명량은 이순신 장군의 수군 복귀를 그린 강렬하고 감동적인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정치적 음모와 부당한 투옥을 견뎌낸 뒤 이순신장군은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합니다. 엄숙하고 의연한 이순신 장군의 모습은 개인적인 고난에도 불구하고 침략당한 일본군으로부터 조국을 지키겠다는 결의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가 배에 오르자 선원들은 그의 확고한 헌신에 충성심과 존경심을 담아 환호와 경례를 표합니다. 이 오프닝 장면은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며, 이순신 장군의 흔들림 없는 충성심과 임박한 전투의 규모를 강조합니다.

    2. 전투준비와 전략적 전술을 구상하는 장면

    이순신 장군의 치밀한 전투준비와 전략적 전술을 구상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가장 매혹적이고 강렬한 장면 중 하나입니다. 일본 함대가 다가오자 이순신장군은 명량해협의 좁은 해역에서 전설적인 학익대를 결성하라고 함대에 지시합니다. 적의 대형으로 기동성이 떨어지는 함정의 약점을 이용하기 위해 각각의 함선이 치밀하게 배치된 한국군 함선의 배치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3. 명량 해전이 끝난 뒤 마지막 장면

    명량해협 해상에는 일본 군함의 잔해가 널려 있는데, 우리 함대의 격렬한 저항과 전략적 빛을 보여줍니다. 전투의 잔해 속에서 카메라는 함선 갑판에 우뚝 솟은 이순신장군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의 얼굴은 길고 고통스러운 갈등의 고통을 나타내지만, 그의 눈은 깊은 만족감과 긍지를 발하고 있습니다. 카메라는 이순신장군의 처음 준비과정부터 치열한 전투, 감동적인 승리까지를 짧게 보여줍니다. 음악은 커지고 안도감, 상쾌함, 우울함이 뒤섞여 있습니다. 그것은 장군과 그의 부하들의 승리의 크기와 희생을 강조합니다. 바닷소리와 함께 해안가에서 수군과 민간인의 축하와 함성이 울려 퍼집니다.

    총정리

    2014년 개봉한 영화 <명량>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3대 대첩 중 하나인 '명량해전'을 근간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에 대한 3편의 시리즈 중 하나로 첫 번째 제작된 작품입니다. 감독은 '김한민' 감독이 맡았으며, 배우로는 국민 배우 '최민식'배우가 이순신 장군역을, 일본군 '와키자키'역에는 '조진웅'. '구루지마'역에는 배우 '류승룡'이 맡아서 숨 막히는 연기 대결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이순신 장군을 소재로 많은 드라마나 영화가 제작되었지만 이 영화는 이순신 장군의 강한 리더십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전투 장면의 리얼한 영상은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영화는 천만 관객이라는 흥행돌풍을 일으켰으며 관객수 역대 순위 1위를 기록했습니다. 수상내역으로는 51회 백상예술대상(영화대상), 35회 청룡영화상 (감독상, 한국영화최다 관객상) ,51회 대종상(최우수작품상, 남우주연상, 기술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영화 <명량>에서 보여준 이순신 장군의 탁월한 전술과 전략, 변함없는 충성심, 불굴의 의지는 보는 이에게 많은 영감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두 번째 시리즈인 <한산>은 2022년 7월 개봉했으며, 3편 <노량>은 2023년 7월 개봉 예정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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